왜 지금, 다시 ‘존엄한 죽음’인가
최근 사전연명의료의향서 등록자가 300만 명을 넘어섰다고 합니다. 2018년 제도 시행 이후 7년 반 만의 변화이고, 전체 성인 인구 대비 약 6~7%가 임종기에 무의미한 연명의료를 거부하겠다고 미리 서명했다는 뜻입니다. 특히 65세 이상 여성의 참여가 높게 나타났고, 연명의료 거부와 조력 존엄사(의사조력자살) 합법화에 대한 여론도 꾸준히 우호적인 흐름입니다.
블로그를 운영하는 제 입장에서 이 이슈는 “건강과 재정, 삶의 질”이라는 주제와 깊게 연결됩니다. 연명치료의 선택은 의료적 결정이면서 동시에 가족의 간병·재정 부담, 남겨진 삶의 정리, 마지막 시간을 어떻게 보낼 것인지에 대한 ‘삶의 디자인’ 문제이기도 하거든요. 오늘은 사회적 논점, 찬반 논리, 정부 정책과 인프라, 그리고 제가 체감한 현장의 고민을 균형 있게 정리해봅니다.

먼저 개념부터 정리하시죠
- 연명의료결정제도: 임종 과정의 환자가 심폐소생술·인공호흡기 등 치료효과 없이 임종 기간만 연장하는 시술을 하지 않거나 중단할 수 있게 한 절차. (연명의료결정법, 2018.2.4 시행).
- 사전연명의료의향서(AD): 19세 이상 성인이 미리 본인 의사를 문서로 남기는 것.
- 연명의료계획서: 말기·임종기 환자가 담당 의사와 지금 상태를 두고 작성하는 문서.
- 법·판례의 축: 2009년 ‘김할머니’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로 회복불가능·사망임박 상태에서 환자의 자기결정에 따른 연명의료 중단 가능성이 열림. 이후 제도화로 이어짐.
- 조력 존엄사(의사조력자살): 한국은 불허. 다만 스위스 등은 외국인도 가능하고(단체별 상이), 한국인의 이용 사례도 점차 알려지고 있음.
지금 한국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나
① 서약 300만 명 돌파 — 2025년 8월 9일 기준 사전연명의료의향서 등록자는 300만 명을 넘어섰습니다. 성별로는 여성이 남성의 약 2배, 65세 이상 고령층 비율이 특히 높습니다. 이 추세는 2018년 이후 꾸준한 증가의 연장선입니다.
② 여론의 변화 — 2024년 조사에서 성인 1,021명 중 91.9%가 말기·임종기에 연명의료를 중단할 의향이 있다고 했고, 조력 존엄사 합법화에도 82%가 찬성했습니다. 이건 ‘개인 선택 존중’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가 상당히 넓다는 뜻이죠.
③ 그러나 당사자 배제의 그림자 — 제도 첫해 집계에서 연명의료 중단 또는 유보 결정의 약 3분의 2가 가족에 의해 내려졌습니다. 제도가 정착 중임에도 당사자 의사 반영의 비중이 낮았던 건 여전히 고민거리입니다.
④ 의료·돌봄 인프라의 간극 — 호스피스·완화의료 병상은 2017년 1,461개 → 2022년 1,601개로 소폭 증가에 그쳤습니다. 수요에 비해 인프라가 빠르게 따라가지 못한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무엇이 논란인가: ‘자기결정권’ vs ‘생명존중’의 충돌
1) 찬성 논리 — “환자의 뜻을 따르는 것이 존엄이다”
- 헌법상 일반적 인격권·행복추구권에 근거한 자기결정권은 임종기 치료에서도 존중되어야 한다는 주장. 대법원·학계 논의가 그 근거가 됩니다.
- 의료현장에서는 불필요한 시술과 고통을 줄이고, 남은 시간을 의미 있게 보내도록 돕는 것이 더 ‘치료다운 치료’라는 인식이 확산.
2) 반대 논리 — “사회적 압박과 남용을 어떻게 막을 것인가”
- 생명존중의 관점: 생명은 처분 대상이 아니라는 원칙. 특히 조력 존엄사는 경계가 흐려져 취약계층에게 ‘죽음을 택하라’는 암묵적 압박이 될 수 있다는 우려.
- 남용·확대의 우려: 해외 사례에서 대상을 점차 넓힌 흐름을 근거로 “기준 완화→대상 확대”의 경사로 위험을 지적. (해외 논쟁과 스위스의 ‘사코’ 캡슐 사례 등 기술 발전 이슈 포함)
- 의료현장의 혼란: 조력 존엄사가 합법화되면 의사가 ‘치료 계속 vs 죽음 보조’라는 두 옵션을 동시에 제시해야 하는가라는 근본적 질문이 제기됩니다(의사 정체성과 윤리). 국내 정책평가 자료도 절차적 안전장치의 필요성을 강조합니다.
정부 정책은 어디로 가고 있나
2024년 보건복지부는 제2차 호스피스·연명의료 종합계획(2024~2028)을 확정·발표했습니다. 핵심은 선택권 확대와 이행 기반(기관·인력·수가) 강화, 인식 개선입니다. 호스피스 대상·범위를 넓히고, 연명의료결정 수행기관과 의료기관윤리위원회 확대, 맞춤형 상담과 시스템 고도화를 추진합니다.
최근 연구에선 연명의료 중단 이행 시점을 ‘임종기→말기’로 확대하는 데 관련 학회 27곳 중 22곳(81.5%)이 찬성한 결과도 나왔고, 정치권에서도 개정안이 논의 중입니다. 다만 사회적 합의와 절차적 안전장치가 전제돼야 합니다.
또 하나 중요한 축은 당사자 의사 반영 강화입니다. 제도 첫해 가족 결정 비중이 높았던 만큼, 생전(건강할 때)부터 의향서를 작성하고, 진단 이후에는 의사와 충분히 대화해 연명의료계획서로 구체화하는 문화가 더 퍼져야 하죠.
해외의 조력 존엄사, 한국 사회가 배울 점
스위스는 비이기적 동기 하의 ‘조력자살’을 허용하고, 일부 단체는 외국인도 받을 수 있습니다. 한국인의 이용과 대기 사례가 언론을 통해 공개되면서 국내 논쟁에도 불씨가 옮겨붙었습니다. 기술 기반(예: ‘사코’ 캡슐) 논쟁은 ‘안전장치 없이 개인 자율성만으로 충분한가’라는 질문을 더 날카롭게 만듭니다. 제도 설계 시 자율성·취약성·검증가능성 사이의 균형이 핵심입니다.
우리가 보는 균형점: 네 가지 제언
- “당사자-의사 대화”를 표준화 — 연명의료계획서 작성이 병원 문화로 자리잡도록 수가·평가에 인센티브를 붙이고, 진료실에서 ‘마지막 15분 대화’를 위해 체크리스트·설명자료를 표준화했으면 합니다. (이미 수가 시범사업과 교육체계가 일부 진행 중)
- 호스피스·완화의료 인프라 ‘속도전’ — 병상과 전문인력은 숫자가 말합니다. 2017→2022년 5년간 1,461→1,601병상은 ‘현실의 벽’을 보여줍니다. 지역 격차를 줄이고, 암 외 질환까지 실질 접근성 확대가 필요합니다.
- ‘말기 확대’는 단계적·조건부로 — 임종기에서 말기로 범위를 넓히되, 다중 확인(prognosis, 정신능력 평가), 쿨링오프, 제3자 검토(윤리위원회) 같은 세이프가드를 함께 설계해야 합니다.
- 조력 존엄사 논의의 룰 만들기 — 합법화 여부와 무관하게, 사회적 토론의 ‘절차’를 먼저 합의해야 합니다. 대상 질환·연령·의사결정능력 기준, 가족·의료진의 압박을 차단하는 장치, 경제적 이해관계로부터의 독립성(예: 별도 심사기구) 등이 그 룰의 핵심이겠죠.
현명한 준비를 위한 체크리스트 (실전 가이드)
- 건강한 지금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작성: 등록기관(보건소·기관)을 통해 충분한 설명을 듣고 작성하세요. 가족과도 미리 공유해 두는 게 중요합니다.
- 진단 이후에는 의사와 충분히 대화해 연명의료계획서로 구체화(호흡기, CPR, 투석, 승압제, ECMO 등 항목별 선택).
- 호스피스 정보는 지역별 병상·이용 경로를 사전에 알아두세요. (국가·학술 자료 참고)
- 가족에게 재정·간병 플랜을 공유하고, 마지막에 꼭 하고 싶은 일(버킷리스트, 용서·화해·기부·기록)을 적어두면 돌봄 부담과 의사결정 갈등이 크게 줄어듭니다.
‘좋은 죽음’은 결국 ‘좋은 대화’에서 시작된다
숫자가 말해주는 건 분명합니다. 한국 사회는 ‘끝까지 연명’에서 ‘내가 선택한 마무리’로 무게중심을 옮기고 있습니다. 그러나 제도는 아직 과도기에 있고, 인프라는 느립니다. 논쟁의 본질은 찬반이 아니라 어떻게 안전하게, 모두에게 공정하게 선택권을 보장할 것인가입니다. 저는 투자와 생산성만큼이나 ‘마지막 1%의 삶의 설계’가 중요하다고 믿습니다. 그 1%를 위해, 오늘 가족과 10분만 대화해 보세요. 놀랄 만큼 많은 게 정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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