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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식

‘영포티’는 언제부터 ‘젊은 척하는 꼰대’가 되었나: 데이터, 맥락, 그리고 공존의 기술

by 꿈제이 2025. 9.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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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는 “젊은 감각의 중년”이었지만, 지금은 조롱의 아이콘이 된 ‘영포티’. 그 전환의 이유를 개인적 관찰과 숫자들로 차분히 풀어봅니다.

칭찬에서 낙인까지, 10년의 급커브

‘영포티(Young Forty)’는 2015년 즈음, “유행에 민감하고 변화에 기민한 새로운 중년”을 일컫는 말이었습니다. 당시 저는 마케팅 일을 하며 이 키워드를 수없이 들었고, 실제로 브랜드 브리프에는 “건강·자기관리·취미·문화에 과감히 투자하는 40대”가 핵심 타깃으로 등장하곤 했죠. 그런데 10년이 채 지나지 않아, 이 단어는 온라인에서 ‘젊은 척하는 중년’을 비꼬는 멸칭으로 뒤집혔습니다.

트렌드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최근 1년 온라인 언급량은 104,160건. 감성 연관 비율은 부정 55.9%, 긍정 37.6%, 중립 6.5%로 부정이 과반을 넘었습니다. 상위 부정 키워드는 ‘욕하다(1,039)’, ‘늙다(716)’, ‘역겹다(417)’. 이쯤 되면 단순한 유행어의 흥망이 아니라, 세대 갈등·문화적 헤게모니·정치적 양극화가 한데 엉킨 사회 심리 현상으로 봐야 합니다.

1) ‘영포티’의 탄생 | X세대의 성장 서사와 소비의 언어

‘영포티’의 주축은 1970년대생 X세대입니다. 삐삐·시티폰에서 스마트폰으로, 해외여행 자유화에서 글로벌 플랫폼까지, 기술·문화 개방의 격변기를 통째로 통과했죠. 90년대 호황과 1997년 IMF 외환위기를 동시에 경험하며 각자도생의 가치관을 체화했고, “소비로 나를 정의”하는 데 익숙한 첫 세대이기도 합니다. 보고서에 따르면 이들은 전 연령대 중 소득과 지출이 가장 높은 축에 속하며, 그래서 기업에게 블루칩이었습니다.

문제는 이 강력한 구매력과 ‘나를 위한 소비(욜로)’가 시간이 지나면서 “기득권의 과시”로 읽히기 시작했다는 점입니다. 같은 행동이라도 사회적 맥락이 바뀌면 해석이 달라집니다.

2) 긍정에서 조롱으로 | 인식 급변의 신호들

초기의 ‘영포티’ 이미지는 이제 ‘뉴에라 모자, 스트리트 티셔츠, 레트로 농구화’ 같은 아이템과 묶여 “아저씨들의 최신템 코스프레”로 소비되곤 합니다. 심지어 “아이폰 17이 나오면 영포티 아이템 될 것” 같은 밈까지 등장했죠. 시장에서도 ‘브랜드의 사회적 연령’이 높아지면 원래 핵심층(MZ)이 이탈하는 장면을 자주 봅니다. 어떤 애널리스트는 “러닝화 주가가 약한 건 아저씨들의 일상화 아이템이 됐기 때문”이라고 해석하기도 했습니다.

저는 이 대목에서 브랜드는 제품이 아니라 ‘소속감’을 판다는 기본을 다시 떠올립니다. 문화적 중심에 있던 집단이 느끼는 잠재적 박탈감 “우리의 상징을 누가 가져갔다”이 감정이 조롱이라는 방어기제로 표출되는 거죠.

3) 왜 문제가 되는가 | 네 가지 층위의 갈등

3-1. 문화적 헤게모니의 경합

20대가 가진 상징적 자본(스트리트 패션, 최신 플랫폼, 밈)을 40대가 차용하면, 문화적 주도권이 침해된다고 느낄 수 있습니다. 기성세대가 과거 “MZ를 고쳐야 한다”고 했던 권력 구도가, 이제는 문화의 중심을 쥔 MZ가 ‘영포티’를 대상으로 미러링하는 듯 보입니다.

3-2. ‘서윗 영포티’—겉과 속의 불협화음

겉으로는 페어·인클루시브를 말하지만, 실제로는 특정 젠더/연령에게만 선택적 ‘스윗함’을 베풀거나, 책임은 회피하는 장면. 이런 이미지와 행동의 괴리가 반감을 증폭시킵니다. 젊은 세대의 언어를 ‘활용’만 하고 내면화하지 못했을 때 생기는 균열이죠.

3-3. 새로운 기득권에 대한 반감

40대는 인구·소득·의사결정의 ‘골든 에이지’입니다. 그 자체가 비난의 이유가 될 수는 없지만, 사회적 책임보다 개인의 만족에 집중하는 듯 보일 때 다른 세대의 박탈감을 건드립니다. “586과 뭐가 다르냐”는 레토릭은 이 지점에서 나옵니다.

3-4. 정치적 양극화와의 결박

‘영포티 스타터팩’ 같은 밈은 특정 정치 성향·커뮤니티·캠페인을 한데 묶어 낙인을 강화합니다. 소비 취향이 곧 정치 정체성으로 읽히는 순간, 논의는 즉시 진영전이 되며 대화는 끊깁니다.

 

4) 계층·세대별 시선 차이 | 같은 그림, 다른 해석

  • 20대: “문화적 주도권을 뺏겼다”는 불안. 조롱은 경계선 긋기의 언어.
  • 30대: 위아래로 끼인 세대. 실용주의적 체념과 은근한 거리두기가 섞임.
  • 40대(영포티): “이제 내 삶 살겠다”는 보상 심리. 다만 ‘나는 다르다’는 자기 서사가 타인의 눈에 과시로 비친다는 점을 종종 놓침.
  • 50대 이상: “우리도 그 시절 있었다”는 회고와 “요즘 방식은 낯설다”는 경계심이 공존.

같은 행동이라도 이해관계와 위치에 따라 해석이 달라집니다. 그래서 정답 대신 맥락이 필요합니다.

5) 내가 본 ‘영포티’ | 현장에서 느낀 세 가지 장면

  1. 피트니스에서—체성분표를 들고 식단·수면·보충제를 진지하게 묻는 40대를 자주 봅니다. 건강 투자 자체는 멋지지만, 간혹 “PT도 결국 인맥” 같은 말로 줄을 서게 만들 때 젊은 회원들이 표정관리를 못 하더군요. 건강은 사적이지만, 공간은 공적입니다.
  2. 브랜드 협업 자리에서—“MZ 감성”을 말하지만, 실제 의사결정 기준은 KPI보다 ‘나의 취향’에 기울 때가 있습니다. 그 순간 영포티의 소비가 취향 민주화가 아니라 취향의 사유화로 오해받습니다.
  3. 사내 멘토링에서—“요즘 애들 힘든 일 시키지 마”라는 ‘스윗함’이 일을 다른 동료에게 평평하지 않게 배분합니다. 배려는 공정과 한 세트여야 합니다.

6) 건강·재무 관점에서 본 ‘영포티’의 딜레마

제 블로그가 다루는 주제(건강·재무·자기계발)로 보면, 영포티의 ‘나를 위한 소비’는 충분히 이해됩니다. 문제는 과시적 신호가 덧입혀질 때입니다. 건강은 지속성이 핵심인데, 한 번의 비싼 패키지보다 작고 반복 가능한 루틴이 결국 승리하죠.

재무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번 돈, 내가 쓴다”는 태도는 자유지만, 장기적 관점에서 현금흐름·위험관리·대체불가 경험 투자(관계·학습) 간 균형이 필요합니다. 저는 영포티의 소비를 표식(signaling)이 아닌 축적(compounding)의 언어로 바꾸는 게 세대 간 오해를 줄이는 빠른 길이라고 봅니다.

7) 낙인에서 공존으로 | 실천 체크리스트

  • 표현의 전환: “젊게 살겠다”에서 “유연하게 배우겠다”로. Age-less보다 Bias-less.
  • 덕질의 태도: 신(scene)에 들어갈 때는 청취 → 참여 → 기여의 순서. 먼저 듣고, 다음에 사고, 마지막에 나눕니다.
  • 공정과 배려를 함께: ‘서윗함’은 구조를 바꾸지 못하면 누군가에겐 부담입니다. 규칙과 투명성부터.
  • 소비의 언어 바꾸기: 보이는 아이템보다 보이지 않는 능력(체력·문해력·디지털 리터러시)에 투자. 신호가 아닌 내재 가치.
  • 정치화의 회피: 취향에 즉시 정치 라벨을 붙이지 않기. 토론의 장을 취향 전쟁터로 만들지 않기.

 ‘영포티’가 던지는 질문

‘영포티’는 세대 구분의 스티커가 아니라, 한국 사회가 나이 듦을 어떻게 재구성하는가를 비추는 거울입니다. 긍정적 상징에서 멸칭으로의 전환은, 우리에게 “다름을 견딜 감정 근육을 얼마나 길렀는가”를 묻습니다.

저는 이 단어를 폐기하기보다 업데이트하고 싶습니다. “겉모습이 아니라 사고방식과 태도를 바꾼 중년”이라는 초기 정의를 살리되, 책임과 공정, 학습과 기여라는 내용을 채워 넣는 것. 결국 세대 공존의 문법은 거창한 이념이 아니라, 오늘 기댈 수 있는 구체적 태도에서 시작됩니다.


 

출처 : 조선일보 (일러스트 : 송윤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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